사순 제5주일 가해

 

수련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시신을 만져보니 차가웠다. 그리고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서 차갑고 냉랭하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죽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하느님과 같은 자비와 인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고 믿고 있는 라자로를 살려주신다. 아프다고 들었지만, 그의 아픔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시는데 라자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도 조금 있다가 라자로를 찾아간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하느님께 기도한다. 다 들어주시는 줄 알지만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유대인들이 따르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지만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막에서 물을 달라고 하면서 모세에게 대드는 백성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자 하느님께서는 바위를 지팡이로 치라고 하시는데 잘난 척하느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마치 자신이 하는 것처럼 큰소리로 백성들을 야단치며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사람을 죽음과 같은 처지에서도 살아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태생소경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눈이 먼 것이지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다. 라자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시면서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비참한 벌인 죽음에서 살리심으로서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조차도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시리라는 것을 부활로 증명하신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드러내는 겸손함으로 시신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사랑을 실천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