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다해

요한 13,31-33, 34-35

 

불행스러운 상황이 되면 왜 나만 이런 일이? 그러나 불행한 일도 기회가 된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짧은 순간에 덜 고생하면서도 성인이 되는 기회를 말한다. 순교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그런 기회는 찾아온다. 우리의 선행과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될수록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지만, 그 영광을 하느님께서는 아들에게 돌려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돌려주실 것이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 가정에서도 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이 베풀고 좋은 얘기하고 죽을 때까지 선하게 사는 방법은 너무 힘들다. 90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성인의 올려도 전혀 문제가 아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 욕 안 먹고 살았더니 밖에서 하던 것 절반만이라도 집에 와서 하라고 말한다.

가정에서 문제가 없게 살았더니 도대체 재미가 없단다. 일 끝나고 집으로 오고 집에서 화초를 키우고 이벤트도 만들지 모르고 살아서 사는 재미가 없단다.

술 먹고 수없이 추태를 부리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고 살다가 힘이 없어서 자제하고 몇 달 술을 끊고 살았더니 성인 되었다고 좋아한다.

어디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통, 죽음, 부활로 예수님을 그렇게 만드신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의 아들은 아들을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신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느님은 영광보다 모욕을 받았다. 이스라엘에 생긴 불행한 일 때문에 이방인들조차도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무시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은 선행이 분명히 드러나는 사람들 덕분에 영광스럽게 되셨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나 판관들,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스라엘의 왕들로 하느님의 계약은 이스라엘에 이어져 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늘 복음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며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의 하느님과의 계약을 새롭게 하시어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새로운 계명을 말씀하신다.

새로운 계명이란?

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를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사랑해야 한다.

2)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분의 계명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3) 거룩하고 영적인 방식으로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웃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이다.

모세의 율법은 형제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명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셨다.

1)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면서 하느님과 동등한 지위를 버리고 우리의 비천한 처지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2) 우리를 위해 더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육의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의 매질과 모욕과 조롱, 이루다 꼽을 수 없는 숱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