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9 주간 토요일

 

홈페이지가 있다. 거기에 글을 써놓았는데 읽어볼 때 마다. 수정을 한다. 어떤 것은 내가 쓴 것 같지 않게 너무 멋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수정하지 않는 그런 글이였으면 좋겠다.

그곳의 글은 기분 나빠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그때 그 사람이나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읽으니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다.

내 말과 내 행동이 의미 없이 사라지기보다는 오늘이 지난 후에도, 시간이 지났어도, 내 생활과 삶이 필요했고, 중요했으면 좋겠다.

오늘 복음은 무화과나무를 조금 더 기회도 주면서 키워보겠다고 한다.

잘 살아보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요즈음에는 어른이 없다고 하면서 핑계를 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의미 있고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중에 수정할 것 없이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더라도 똑같은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고 있다.

가끔 우리들의 눈에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런 그늘 아래에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언총이와 은총이라는 발음을 구분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분명하게 들리게 발음을 하는 사람들을 어려서부터 못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은 저절로 혹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들을 우리는 배워서 익힌 것이다.

아직 젊지만 바쁘다. 우리 노신부님은 연세가 한국 나이로 86세이신데 바쁘시다고 하셨다. 물건을 놔두고 찾고 또 잊어먹고 찾으신다고 하셨다. 이곳에 올 때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아직도 못 읽고 오늘도 가져왔다.

우리 대에 끝나는 세상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엄청 바쁠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주신 어른들의 가르침을 이제 조금 살을 붙여서 앞으로 더 많은 세대를 위해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 하루를 허락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줄 교훈 같은 혹은 교과서 같은 모습의 수정이 필요 없는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부끄럽지 않고, 나중에 돌아봐도 너무 의미가 있는 모습이 무언지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