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3 주일 다해

 

요즈음 신상털기라고 하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개인의 모든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개인적인 사생활이 많은 사람들 앞에 투명한 유리관에 넣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처럼 되었다. 앞으로는 성직자의 삶의 모습이나 수도자들의 삶의 일상도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경외심 없이 보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요한의 말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받을만큼만 받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며 남은 것들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라고 신앙인 혹은 교회에게 알려준다.

 

봉쇄수도원의 생활을 영화로 만들어 상영되고 있다고 함께 가자는 사람이 있었는데 여유가 없어서 미루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갔다고 왔다고 하면서 절반은 졸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수도자, 성직자의 삶, 교회의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할 수 있거나 관심을 갖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가끔 세간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해보고선 수도자나 성직자로의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보게끔 살아가고 있다면 교회와 수도회의 책임이자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각자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삶을 보호하지 못해준 신앙인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들은 혹시 성직자, 수도회들의 양심고백과 같은 형태로 수도회를 알리고 성직의 길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른 것 없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편안한 삶을 약속하고, 장래를 보장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흐트러진 모습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들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조금 더 쉽게 일하려는 모습, 조금 부유하게 되어야 드러나 보이고 큰소리를 치는 사회현상에 동화된 모습으로의 한 단면은 아닐까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소에 응하는 모습은 다른 성소보다 조금 더 사랑과 인내를 포함한 어렵고 힘든 삶의 여정이어야 하고, 수도자나 성직자는 사회 안에서 외면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대림절을 보내면서 세례자요한의 얘기를 묵상하며 세상 사람들의 인정 안에서 내가 신부인데 혹은 수도자인데 라는 생각으로 혜택을 먼저 생각하고 권리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교회나 수도자들의 모습은 초라해 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