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 주일 다해

 

선거철이어서 길을 가도, 집안에 있어도 한 표를 부탁한다는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다. 소음으로 들리는 이유가 그 사람들의 삶이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들렸던 싱싱한 생선, 산지에서 직송한 과일이나 채소를 판매하던 사람들의 앵무새 같은 반복적인 소리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가서보면 그렇게 싱싱하지도 않고 싸지도 않은데 스피커의 빈소리가 듣기 싫은 것이다. 고생하는 사람들로 봐서는 많이 팔아서 대박이 났으면 좋겠지만 시작과 멀어짐의 간격이 짧은걸 보면 나와서 사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늘 복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에 대해서 얘기한다. 요한의 회개에 대한 초대를 말한다.

 

가끔 가톨릭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전 문제나 그 외 여러 가지 사건들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서이다. 교회가 세상살이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수도자와 성직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청빈, 정결, 순명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 정결, 순명으로 살아가는 성직자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자식들에 위한 재산축척 없이 살아가고, 머리 둘 곳이 없어 가라고 하는 곳에 가서 살아가는 삶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한이 광야에서 부르짖는 작은 소리도 마찬가지고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갔던 요한의 삶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들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성직자나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그 자리나, 그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한다.

 

성직자가 순명하지 못하고, 수도자가 재산형성에 혈안이 된다면 그만큼 교회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는 큰소리를 칠 수 없게 된다. 지금 교회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 병자, 노인,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 더 어려운 일을 선택해서 일을 할수록 교회의 외치는 소리는 커질 것이고 사람들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교회의 모습임을 생각하자.

 

이런 의미로 가정 안에서나 신앙인 각자에게도 남들이 어려워하고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한 선택이 신앙인답고 성가정 안에서 세상에 외치는 작은 소리지만 큰 울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