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는 환경

 

문제가 있다고 엄마나 아빠의 손에 이끌려서 오는 아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런데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렇게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저 보통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작은 문제일 뿐이고 그런 문제들은 누구나 갖고서 살아간다. 문제는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

 

해결을 위해서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 안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면 좋겠는데 아이만의 문제로 돌리고 당장 그 결과를 내놓기만 바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어떤 것들은 습관화가 되어서 고친다는 것이 어렵다. 다만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 부모는 자신들의 삶부터 하나씩 고쳐가면서 아이와 잘못된 것들을 거쳐야 하는데 부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아이만 닥달을 하니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이 이룬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육화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고 얘기하고 고통도, 모욕도, 그리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내놓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써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이 사셨다면 신앙인이나 수도자, 성직자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들을 가지고 사셨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우리들에게 바라신 다. 예수님의 삶이나 말씀을 보고 들으면 가정에서 어떻게 자라셨는지 짐작을 하게 한다.

 

너희는 이것을 받아먹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행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면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파견하신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아 사람이 되신 것이나 우리가 파견을 받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다.

 

TV에서 유치원 아이들 인터뷰하는 것이 나온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집에서 하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은 다 보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가치로 판단한다. 그 아이들이 보고, 들은 내용들을 아이들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가 있고 그것이 이상한 행동으로 나온다면 아이들이 판단을 하기 전에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덜 생기고 어른들이 바라는 바대로 아이들은 판단하고 생각하며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판단에 대한 도움을 주는 학교, 교회 그리고 나아드신 어르신들이 있다.

 

신앙인이요 수도자로서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그 사람만의 문제보다는 보다 넓게 교회나 수도회 안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